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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인물

평창이씨 본원 선계록(平昌李氏本源先系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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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 6,581 작성일 18-07-1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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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진한,마한,변한) 역사에 기록하야 있기를 진한땅에 여섯마을이 있으니,


  첫째 마을은 알천 양산촌(今 담암사)이니 이 마을의 장은 표공이요 이름은 알평이라 하는 분이 표암봉에서 하강하시고 

  둘째 마을은 돌산 고허촌(今남산부)이니 이 마을의 장은 소대도리라 하는 분이 형산에서 하강하시고 

  셋째 마을은 무산 대수촌(今장복부)이니 이 마을의 장은 구례라 하는 분이 이산에서 하강하시고 

  넷째 마을은 자산 진지촌(今통선부)이니 이 마을의 장은 지백호라 하는 분이 화산에서 하강하시고 

  다섯째 마을은 금산 가리촌(今가덕부)이니 이 마을의 장은 지타라 하는 분이 명활산에서 하강하시고 

  여섯째 마을은 명활산 고야촌(今임천부)이니 이 마을의 장은 호진이라 하는 분이 금강산에서 하강하시니라.


이 시대에 사람은 여섯분 할아버지가 하날로부터 하강하셨다고 이름으로서 이 여섯분이 진한의 육부장이 되시였느니라.
(동국역사의 기록하야 있기를 조선의 거민이 동해변에 다수히 거주하고 있음으로써 처음에는 여섯마을로 나누어서 지내다가 뒤에는 육부가 되었다고 일렀느니라. 참고 조선의 부족 결성이 이때부터 시작하였음)

중국 한나라 헤제원년 정미에 시조 휘 알평공이 처음으로 표암봉 아래에 (표암봉이 경주에 있음) 하강하셔서 구봉함혁으로 더불어 동거하다가 양산촌장으로 오시니 거주하는 백성들이 감히 이름을 부르지못하고 표공이라 존경하야서 받들어 부르니라.


그때에 나라를 통치하는 국왕이 없음을 근심하시고 여섯 마을 촌장이 알천에 모여서 국왕을 보내줍소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한나라때 선제지절원년 임자년 봄에) 조대공이 양산을 망견하니 양산 아래 나정이라는 우물 곁에 이상한 기운이 있는 것 같은 지라 표공이 가셔서 그 곳을 탐시하니 흰 말이 무릎을 꿀고 울다가 홀연이 간데를 감추고 보이지 않고 다만 큰 박이 그 곳에 놓여 있거늘 가지고 돌아와서 그 박을 따개고 보니 영웅적인 어린아이가 나오는지라 거두어서 잘 양육하야 성을 "박"이라하고 이름을 "혁거세"라 하니라(후일에 이 아이가 자라서 신라의 초대 왕이 되니라)


한나라 선제 오봉 원년 갑자 하(夏) 사월 병진에 박 혁거세를 추대하야 왕위에 오르니 그 때에 나이 십삼세라.  나라 이름을 서라벌(뒤에 신라로 고침)이라하고 표공으로써 대보좌명벽상공신을 삼고 또 아간을 삼어서 (경주이씨 대보에는 아찬이라 써 있음) 그 뒤에 표공으로 여서(사위)를 삼았다.


유리왕 구년에 이르러서(한나라 광무황제 근무8년 임진) 육부의 이름을 고치고 인하야 성을 주니(사성) 

    양산촌을 급양부로 고쳐서 사성 이(李)씨하고, 

    고허촌을 사양부로 고쳐서 사성 최(崔)씨하고, 

    대수촌을 모양부로 고쳐서 사성 손(孫)씨하고, 

    진지촌을 본피부로 고쳐서 사성 정(鄭)씨하고, 

    가리촌을 한기부로 고치고 사성 배(裵)씨하고, 

    고야촌을 습비부로 고치고 사성 설(薛)씨하니라.

신망 기사년에 진한 땅 아진포에 늙은 할머니가 있어서 까치우는 소리를 듣고 강물 위를 바라보니 강물 중류에 돌함이 있는데 돌함 위에 까치가 앉아서 울다가 까치는 날아가고 돌함만 강물 중류에 있는지라 그 돌함을 건져서 열어보니 영특한 아이가 나온지라 이 사실을 신라왕이 듣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표공으로 하여금 그 아이를 수양케하야 성장함에 이름에 신라왕이 여서를 삼고 성을 "석" 이라하고 이름을 "탈해"라 하야서 박씨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되니라.


남해왕 오년 무진(한나라임금 유자영 거섭삼년)에 석탈해왕이 양산에 있는 표공의 저택을 망견하고 길지라하고 계교로써 그 땅을 취하니라. 한나라 명제8년 을축에 신라왕이 밤중에 금성 서편 시림 사이에 닭 우는 소리가 있음을 듣고 표공을 보내서 탐시하니 금빛과 같은 작은 함이 나무끝에 걸려서 있거늘 내려서 함을 열고보니 영특한 아이가 나오는지라 거두어 길러서 성을 "김"이라하고 이름을 "알지"라 하여서 석씨의 뒤를 이어 왕이 되니라.


표공의 향년이 이백여세를 생존하셨으니 그 사적이 신라박씨, 석씨, 김씨, 삼국사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표공의 37세손 휘거명 씨는 신라 때에 벼슬이 중서령을 지냈고, 아들 금현 씨는 벼슬은 병부령을 지냈고, 

아들 금서 씨는 벼슬은 중원태수 호부랑중을 지냈고, 신라 경순왕의 제삼녀 신낭궁 부인에게 결혼하여서 

두 분의 아들을 출생하였다.


장자는 윤홍 씨니 경주이씨의 선조가 되고 차자는 윤장씨(천우라고도함)니 평창 이씨의 시조라 처음에 근원이 발하기를 한 뿌리에서 낳아서 성은 같고 관향은 다른 고로 그 사적을 구보에 의하야 기록하고 또 역사를 상고 하여서 자세히 기재하는 바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