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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인물

평창이씨의 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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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 7,487 작성일 18-07-16 11:36

본문

시조(始祖)

 

휘는 윤장(潤張) 또 천우(天佑)씨라고도 이름

호는 백아(白雅) 시호(諡號)는 문성공(文成公)

 

표공(瓢公)의 37세손 거명(居明)씨가 신라조 때에 중서령(中書令)을 지내고, 아들 금현(金現)씨는 병부령(兵部令)을 지내고, 금현씨의 아들 금서(金書)씨는 중원태수 호부랑중(中原太守 戶部郞中)을 지내셨는데, 

신라 56대의 왕인 경순왕 김부의 셋째 딸 신난공주(神鸞公主)를 맞아 부마(駙馬)가 되어 두 분의 아들을 나으시다. 


장자는 윤홍씨요 차자는 윤장씨라 이르니 윤홍씨는 경주이씨의 선조가 되고, 윤장씨는 우리 평창이씨의 시조가 되시다.

한 뿌리에 나서 성은 같으나 관향(貫鄕)은 다른 고로 경주이씨의 구보와 우리 평창이씨의 구보를 상고하고 또 역사를 상고하야 자세히 기재하는 바이라.

 

우리 시조 백오부원군은 신라가 나라를 잃을 때에 고려 태조 왕건씨를 도와서 건국에 큰 공이 많으심으로써 광록대부대사마(光祿大夫大司馬) 벼슬을 지내시고, 고려2대왕 혜종원년(서기 943년)에 개국공신과 백오부원군을 봉함으로써 비로소 관향(貫鄕)을 경주로부터 평창으로 분적(分籍)하셔서 우리 평창이씨의 시조가 되시니라. 

그 후 문성공(文成公)의 시호를 받으시니라

 

[참조] 지금 평창군은 고구려 때 욱오현(郁烏縣)이 설치되었다가 신라 경덕왕때 백오현(白烏縣)으로, 고려 태조23년(서기 880년) 평창현으로 개칭하여 고려말까지 이르렀으며, 조선 태조 원년(서기 1392년) 군으로 승격되었음